<이원호의 경제톡> K-석유화학, 위기 속 기회 모색해야

공급과잉, 수요 정체, 고비용 구조 삼중고에 직면
범용 제품 중심에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해야
기업 간 구조조정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도 필요
빅터뉴스 2025-07-07 13:08:20
한국 석유화학산업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난 10여 년간 수출을 통해 성장하며 제조업과 수출 경제의 중추 역할을 해왔지만, 최근 수출이 정체되고 수익성이 나빠지면서 산업 전반이 빠르게 둔화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단순한 경기 불황이 아니다. 산업 구조의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친 것이다. 이대로라면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 전체가 생존을 위협 받는 구조적인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석유화학산업은 자동차와 가전, 건설 등 전방 산업에 필수 원자재를 공급하는 기간산업으로서, 국가 경제에 중요한 기여를 해왔다. 과거 화학제품 제조업은 제조업 부가가치에서 상위권을 차지했으며, 우리 수출에서도 10% 내외의 비중을 꾸준하게 유지해왔다. 하지만 최근 공급 과잉과 수요 둔화로 수출 물량과 단가가 동반 하락하면서 수출 증가가 정체되고 있다. 석유화학 기업들의 부진은 제조업 투자와 고용에도 부담을 주며 경제 성장을 견인하던 석유화학 부문의 기여도가 점차 축소되는 양상이다.

현재 석유화학업계는 심각한 영업 환경 악화에 직면해 있다. 설비 가동률은 대폭 하락하여, 2023년 말 기준 NCC(나프타분해설비) 평균 가동률은 약 74.0%로, 2021년 93.1%에 비해 2년 만에 약 20%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70%대 가동률은 업계에서 공장 가동의 마지노선으로 간주되며, 현재 이 수준으로는 설비를 돌릴수록 적자가 늘어나는 상황이다. 실제로 2024년 기준 롯데케미칼, LG화학 석화 부문 등 국내 주요 NCC 기업들은 계속된 가동률 조정에도 불구하고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K-석유화학이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된 원인에 대해 국내 요인으로는 산업 구조적 한계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은 에틸렌, 프로필렌 등 범용 기초제품 중심으로 성장해 왔는데, 이들 제품은 기술 장벽이 낮고 가격 변동성이 크다. 이에 따라 중국 등 경쟁국의 생산설비 확장에 취약한 대응 능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국내 기업들은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과 사업 다변화에 다소 소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제품 차별화와 수익성 제고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외 요인으로는 글로벌 수요 둔화와 주요 수출국의 정책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자국 내 석유화학 설비를 공격적으로 증설하며 자급률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리면서 한국산 제품의 수입을 대폭 줄였다. 2018년 대비 2023년 중국향 석유화학제품 수출은 약 17% 감소했다. 일각에서는 2030년 한국의 대중국 수출 물량이 2024년 대비 62% 감소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여기에 미·중 무역 갈등, 중동 지정학적 불안정성 등으로 에너지 수급과 가격의 변동성이 커지며, 석유화학 산업의 수출 환경은 더욱 불확실해지고 있다.

실제로 보스톤컨설팅그룹(BCG)은 지난 2일 ‘국회미래산업포럼’에서 구조적 한계에 처한 K-석유화학의 현실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BCG 진단에 따르면 “현재 한국 석유화학산업은 공급과잉, 수요 정체, 고비용 구조라는 삼중고에 직면해 있으며, 고부가 제품 비중이 낮고 범용 제품 중심으로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면서 “수요 회복 없이 공급과잉이 지속된다면 구조조정이 불가피 하다”고 경고했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단순한 불황을 넘어 생존을 위한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산업 전환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원호 박사


K-석유화학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과감한 전환 전략이 요구된다. 먼저 범용 제품 중심의 생산 구조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소재로의 포트폴리오 전환을 가속화해야 한다. 전기차 배터리 소재와 친환경 플라스틱, 반도체 세정용 화학소재 등 첨단 수요에 대응하는 차별화된 제품 개발이 핵심이다. 정부도 기업 간 구조조정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 R&D 세제 지원, 인프라 투자 등 제도적 뒷받침에 적극 나서야 한다. 

석유화학산업은 우리 제조업의 근간이자 미래 산업의 핵심 소재 공급망을 책임지는 전략 산업이다. K-석유화학이 우리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만큼, 반드시 지켜내고 재도약시켜야 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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