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우리나라와 미국, 유럽연합, 캐나다, 일본, 중국, 호주, 뉴질랜드, 스위스 등을 대상으로 코로나19가 화폐 수요에 미치는 영향 및 시사점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27일 한국은행이 발표에 따르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비대면 소비 및 결제가 증가하는 가운데, 현금 수요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화폐발행잔액 증가세는 2011년 초를 정점으로 둔화되는 모습을 보였으나 코로나19 발발을 계기로 올해 3월 이후 다시 확대되는 상황이다. 주로 5만원권이 발행 증가세를 주도하면서 올해 3월부터 8월중 환수율도 20.9%로 지난해(60.1%) 대비 약 40% 급감했다.
미국 등 주요 8개국을 대상으로 최근의 화폐발행 동향을 살펴본 결과, 코로나19 발발 이후 대체로 각국의 화폐 수요 증가율이 평시 대비 2배 이상 상승하였으며, 3배 이상에 달하는 국가도 있다. 미국, 중국, 호주, 뉴질랜드, 스위스의 경우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된 올해 3월 이후 화폐발행잔액 증가율이 위기전인 2019년 증가율 대비 2.4~3.0배 상승했다. 유럽연합과 캐나다, 일본 등은 올해 3월 이후 화폐발행잔액 증가율이 2019년 대비 2배 이하(1.1~1.9배)로 상승했다. 공통적으로 금년 3월이후 화폐 수요 증가세가 점차 확대되는 가운데, 일본, 중국, 뉴질랜드, 스위스의 경우 올해 7월 이후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으나 미국, 호주, 유럽연합, 캐나다는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경우 올해 4월 화폐발행잔액 증가율이 급감한 것은 전년도 황금연휴 화폐수요 증가에 기인한 기저효과로 볼 수 있다.
◆ 주요국가 예비용 현금 보유액, 고액권 발행 증가
미국은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해지면서 민간의 화폐 수요가 큰 폭으로 증가했으며 지난해 3~8월에는 5% 수준이던 화폐발행잔액 증가율이 올해 3~8월에는 평균 13%(7월 14%, 8월 15%)에 달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11%) 보다 높은 상승세를 보였다. 미국연준(Fed, 연방준비제도)이 실시한 소비자 지급수단 조사(Diary of Consumer Payment Choice)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보다 민간의 거래용 현금 보유가 17%($69 → $81), 소지하지 않고 집이나 사무실에 가치 저장 목적으로 보관하는 현금인 예비용 현금 보유가 88%($257 → $483) 각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이후 현금 보유를 늘렸다고 답한 응답자의 경우, 거래용 현금 보유액은 평균 71%($73 → $125)가 늘었고 예비용 현금 보유액은 평균 427%($178 → $937) 증가했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올해 3월 8일에 일부 금융기관 창구에서 거액 현금 인출 수요가 확대되자 현금을 인출하는 것보다 은행에 예치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보도자료까지 발표했다.
유럽연합의 경우 화폐발행잔액 증가율은 지난해 3~7월중 평균 5% 수준에서 올해 3~7월 평균 9% 수준으로 상승해 글로벌 금융위기(15%)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화폐 권종별로는 고액권인 200유로권이 가장 높은 91%의 증가율을 나타냈다. 올해 3월 이후 발행증가액중 비중은 50유로권이 가장 높은 82%를 차지했다. 200유로권 발행잔액의 경우 지난해 9월 유럽중앙은행(ECB)가 정책금리를 –0.5%로 인하한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한편 4월초 일부 국가에서 현금 인출 규모가 감소하였는데, 이는 봉쇄령에 기인한 것으로 파악된다.
캐나다는 화폐발행잔액 증가율이 지난해 3~7월중 평균 5% 수준에서 올해 3~7월중 9% 수준으로 크게 상승(8.1%) 했다. 캐나다 중앙은행(BOC)은 3월초 민간의 화폐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발행준비자금(inventory)*을 보유가능 최대치의 90% 수준으로 늘였으나 금융기관의 인출 지속으로 4월말에는 동 수준이 약 70%로 하락했다. 캐나다 중앙은행(BOC)이 올해 4월에 자국민 4천여명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이후 실시한 현금 보유실태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현금을 보유한 인구수는 소폭 감소하였으나 개인별 현금 보유액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중에 현금을 소지(Cash on hand)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지난해 대비 8%p 감소(80% → 72%)했으나 보유액은 21% 증가($70 → $85, Median 기준)했다. 현재 소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집, 차 등에 예비용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응답 비율은 11%p 감소(29% → 18%)했으나 보유액은 22% 증가($185 → $225)했다.
일본은 위기 초반의 경제활동 위축으로 4월중 ATM 현금 인출이 일시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후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화폐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5~8월 평균 3% 수준이던 화폐발행잔액 증가율이 올해 7~8월에는 6% 수준으로 상승했다. 권종별로는 최고액권인 10,000엔권이 2020.5~8월 증가분의 97%를 차지했다.
코로나19가 가장 먼저 시작된 중국은 지난해 2~6월 평균 3% 수준이던 화폐발행잔액 증가율이 올해 2월부터 큰 폭으로 상승하여 3월에는 11%에 달한 바 있으며 확산세가 진정된 현재에도 9% 수준의 증가율을 유지하고 있다.
◆ 현금접근성 제약 우려에 대한 대응으로 현금 수요 증가
한국은행은 현금 수요 증가 요인으로 첫째 각국의 코로나19 확산 및 봉쇄 등 조치로 일반의 현금 접근성이 제약될 우려가 높아지면서 사전에 현금 재고를 확보하려는 수요가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 캐나다, 러시아 등 국가에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일부 시중은행 지점 및 ATM 폐쇄 조치가 사전에 현금을 비축하고자 하는 수요를 유발했다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 고액권이 아닌 50유로화가 발행잔액 증가의 82%를 차지하는 등 일상거래에 대비한 현금 확보도 크게 증가했다.
둘째 금융기관의 영업용 현금 확보다. 화폐수급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지급 및 화폐 교환 수요에 응하기 위해 금융기관이 적극적으로 현금 확보에 나섬에 다라 현금 수요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금융기관들은 봉쇄령으로 인한 현송 중단 등 화폐수급 차질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하여 현금 보유 규모를 확대하고 있으며 경제활동 축소로 인해 도소매점 등으로부터의 현금 입금 규모가 감소하면서 금융기관의 현금 확보 어렵기 때문이다.
셋째 최근 미국, 유럽 등 주요국에서 화폐 수요가 크게 증가한 것은 불안한 경제 상황 대응에 있어 경제주체들이 안전자산 및 안전결제수단으로서 현금을 선호하면서 예비적 화폐 수요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현금 수요는 대부분 거래적 목적을 위해서는 저액권 위주로 사용되며 가치저장수단 및 비축 목적 등의 예비적 목적을 위해서는 고액권 위주로 사용된다. 특히 유럽연합은 200유로권 발행잔액 증가율이 12%를, 일본은 10,000엔권이 화폐발행잔액 증가분의 97%를 기록하여 고액권을 중심으로 한 예비용 화폐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한국은행은 Y2K, 글로벌 금융위기 등 과거 위기 상황에서도 금융시스템 중단 우려 등에 기반한 현금 비축 수요(panic-driven hoarding)가 증가한 바 있으며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현금 수요가 고액권이 중심된 사례를 들며 현재 상황도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로 금융시스템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 안전자산 선호심리로 고액권을 가치 저장 수단으로 활용하는 모습이 재현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은 코로나19 등 경제 불안 상황에서 현금 수요가 크게 증가할 수 있음에 대비하여 충분한 발행준비자금의 확보·유지에 더욱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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