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미국은 세계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고율 관세 부과 후 탈미국화 가속
美 중심 공급망 재편 오히려 역풍
압박보다 호혜적 제도 재구축해야
빅터뉴스 2025-10-07 08:19:54
트럼프 행정부가 재출범하면서 글로벌 통상 질서는 다시 한 번 크게 흔들리고 있다. 모든 국가에 보편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초강경 조치와 함께 자동차와 철강, 농산물 등 전략 품목에 대한 고율 관세는 동맹국과 경쟁국을 가리지 않고 동시에 겨냥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문제는 미국의 압박에 대한 각국의 반응이 제각각이라는 점이 혼란을 부추긴다. 단순한 통상마찰을 넘어 세계 경제 질서의 향방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캐나다는 초기에 ‘즉각적이고 강력한 대응’을 경고했다. 이후 일부 보복 관세를 해제했지만, 핵심 품목에 대해서는 강경 입장을 유지했다. 동시에 인도네시아 등과 새로운 무역협정 체결해 시장 다변화를 시도하며, 2026년 예정된 USMCA 재검토를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 멕시코 역시 초기에는 맞대응을 시사했지만, 대미 수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현실을 의식해 대화를 우선시하는 쪽으로 전환했다. 북미 두 국가는 결국 ‘미국과 싸우되 동시에 미국 안에서 살아남는’ 절충 전략을 택하고 있다.

유럽연합과 중국의 태도는 다르다. 양측은 보복 패키지를 승인하거나 단계적 맞불 관세를 공표하며 미국의 공세에 정면으로 대응했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손익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 규범과 동맹 질서를 지켜내려는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다. 미국이 ‘먼저 때리고 나중에 협상한다’는 방식으로 나올수록, 이들 거대 경제권은 보복이라는 수단을 통해 힘의 균형을 추구한다.

일본은 상대적으로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였다.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는 구간 전환 협상에 주력하며 보복 언급은 자제했다. 동맹국 관리와 산업에서 예외 확보를 동시에 꾀하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역시 긴급 금융지원과 대미 투자 확대를 카드로 꺼내며, 관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협상에 집중하고 있다. 두 나라는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동맹국 할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브라질과 인도는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브라질은 50%에 달하는 미국의 철강, 농산물 관세에 대해 ‘불법적이고 비합리적’이라면서, WTO 제소를 검토하는 동시에 맞대응 관세 리스트를 작성하는 등 ‘양보 없는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인도 역시 미국의 고율 관세를 규범 위반이라고 규정하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협상 테이블에서는 유연한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러시아 원유 수입 확대나 방산 구매 지연 등 우회적 보복 카드를 꺼내 미국에 대응하고 있다. 두 거대 신흥국은 단순한 시간 벌기가 아니라, 실질적인 보복에 나설 것이라 밝히고 있다.

미국의 관세 폭탄에 대한 세계 각국의 대응을 유형별로 나누어 보면 크게 네 가지다. 첫째, 협상 유지형(멕시코, 일본, 한국)은 대미 의존도가 높아 맞대응보다 예외·유예를 얻어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둘째, 상호 보복형(EU, 중국)은 대등한 지위를 활용해 정면 승부를 택한다. 셋째, 조건부 강경형(브라질, 인도)은 협상을 병행하면서도 언제든 보복 카드를 실행할 수 있음을 천명한다. 넷째, 혼합형(캐나다)은 보복·다변화·제도적 경로를 동시에 구사하는 전략이다.

그렇다면 제각각의 대응에 맞선 미국이 세계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추어 진다. 단기적으로는 미국이 가진 시장 규모와 기술·금융 패권 덕분에 유리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동맹국조차도 ‘미국 의존 완화’라는 전략적 선택을 모색할 정도로 미국은 세계 경제로부터 고립될 수도 있다. 유럽과 중국은 보복 체계를 제도화했고, 캐나다와 멕시코는 USMCA 재검토를 무기로 삼는다. 한국과 일본도 미국 내 투자를 늘리지만 동시에 동남아·인도 등으로 공급망을 분산시키고 있다. 브라질과 인도는 이미 사실상의 대항 카드를 들고, 이를 실행할 수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원호 박사


미국의 압박은 각국을 굴복시키기보다는 오히려 탈(脫)미국화(diversification)를 부추기고 있다. 세계 공급망은 더 복잡하고 다극화되며, 미국이 의도한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은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미국이 진정으로 이기려면 일방적 압박이 아니라, 상호 호혜적 제도와 신뢰를 재구축하는 데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세계는 ‘미국 없는 질서’의 가능성을 더욱 더 진지하게 탐색하게 될 것이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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