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는 ‘커피의 고향’ 에티오피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커피 역사는 200여년 정도로 비교적 짧다. 케냐 커피는 1893년 선교사들이 마다가스카르에서 동쪽으로 950㎞ 떨어진 부르봉섬(Bourbon Island·현 레위니옹섬 LaRéunion)에서 버본(Bourbon)종을 가져와 심으면서 시작됐고, 영국 식민지 시대 백인 정착민에 의해 농장 설립이 붐을 이뤘다. 그중 한명이 덴마크의 카렌 브릭센 남작부인(Baroness Karen Blixen)이다. 그는 1914년 수도 나이로비 남서쪽 응공 힐스(Ngong Hills)에서 커피 농장을 일구었는데, 1986년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로 소개됐다. 이 영화는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 방식이 독특하다. 보통 영화는 대사나 자막, 주인공의 모습으로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다고 알수 있지만, 이 영화는 커피 나무가 자라는 과정으로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커피는 씨앗에서 떡잎까지 자라는데 50~60일, 싹이 튼 어린 묘목이 밭으로 이식되는데 9~11개월이 걸린다. 커피밭에서 2~3년 지나야 꽃눈이 생기면서 수확을 할 수 있고, 커피 나무가 제대로 자라는데는 씨앗부터 6~7년이 걸린다.
영국은 케냐에 1922년 스콧농업연구소(Scott agricultural Laboratories)를 세워 농업 분야를 지원했는데, 그 중 하나가 커피 품종 개량이었다. 스콧연구소는 탄자니아의 커피 나무를 개량해 가뭄에 강한 SL28과 수확량이 좋은 SL34를 농가에 보급했다. 1963년 영국에서 독립한 케냐 정부는 스콧농업연구소를 국립농업연구소(National agricultural Laboratories)로 바꾼 뒤 1985년 SL28과 SL34, 하이브리 등을 복합 교배해 해충에 강하고 생산량이 좋은 루이루11(Ruiru)을 보급했다. 현재 케냐 커피 생산 품종의 주류는 SL28과 SL34, 루이루11이다.
케냐의 커피 가공방식은 대부분 수세식(Wshed)다. 고원 건조한 에티오피아보다 물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잇점이 작용했지만 열대우림의 습한 기후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부에서는 음부니(Mbuni)를 건식(Dry) 가공 방식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음부니는 상품 가치가 없는 ‘내수용 커피’다. 음부니는 땅에 떨어져 있는 체리를 줍거나 수확 후 커피 나무에 달려 있는 것들을 모아 햇볕에 말려 만드는데, 관리가 제대로 되어 않으니 흙냄새 등 잡내가 많이 난다. 그러니 비싼 ‘수출용 커피’를 사먹지 못하는 슬픔 담겨 있는 ‘빈자(貧者)의 커피’다. 음부니는 케냐 커피 생산의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업자들이 음부니를 건식 방식의 커피라고 수입·판매하고 있는데, 경계해야 한다.
수세식 방식을 고집하던 케냐 일부 지역에서 최근 체리째 말리는 내추럴(Natural) 방식의 커피를 생산하고 있다. 이는 콜롬비아 등지에서 내추럴과 허니 프로세싱(Honey Processing) 등 다양한 방식으로 커피를 만들면서 생두 가격을 높게 받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추럴(Natural) 방식의 커피는 체리 상태에서 발효(Fermented)가 일어나면서 생두에 향미 성분이 수세식 방식보다 휠씬 풍부해 가격 또한 높다.
케냐 니에리(Nyeri) 오타야(Othaya)AA Top 내추럴(Natural)을 테이스팅했다. 품종은 LS28과 LS34가 섞여 있고, 재배 고도는 해발 1800m다.
오타야 내추럴을 로스팅한 뒤 분쇄하자 견과류(Nutty)와 자스민(Jasmine), 향신료(Spices), 장미 등 아로마가 피어 올랐다.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첫 번째 테이스팅을 하니 초콜릿과 자두맛이 나면서 자몽과 오렌지의 산미가 났다.
두 번째 테이스팅에서는 가스가 충분히 빠져 나가 안정화된 느낌이 들었다. 첫 번째 테이스팅 맛에서 느끼지 못한 와인맛(Winy)을 느꼈다. 식을수록 커피를 마시는데 와인을 마시는 듯한 착각이 더욱 들 정도로 입안에 꽉찬 느낌이었다.
세 번째 테이스팅은 같은 품종이지만 수세식 방식으로 가공한 케냐 키암부(Kiambu) 팅강가(Tinganga) Top과 비교했다. 오타야나 팅강가 모두 초콜릿과 자몽, 와인맛을 느꼈지만 여운(Aftertasting)과 커피의 구조감인 텍스쳐(Texture)가 달랐다. 팅강가가 깔끔한 느낌이라면 오타야가 입안에 풍성한 느낌이 들었고, 팅강가의 여운이 오타야보다 상대적으로 짧았다. 오타야는 커피를 마시고 난 뒤 잼을 먹고 난 뒤의 끈쩍한 느낌(Jam-Like)이 남을 정도로 향미가 오래 지속됐다. 와인으로 표현하면 오타야가 묵직하고 강렬(Bold)하다면 팅강가는 가볍고 상쾌(Light)했다.
테이스팅 점수는 다음과 같다.
Aroma 8, Floral 8, Fruit 8, Sour 1, Nutty 8, Toast 8, Burnt 1, Earth 1, Acidity 7, Body 8, Texture 9, Flavor 9, Aftertasting 8, Astringency 1, Residual 1, Soft Swallowing 8, Sweetness 8, Bitterness 1, Balance 8, Defect None(없음).
커피를 마시면서 잘 익은 자두를 먹는 느낌이 들 정로 입안이 풍성했다. 연상된 색깔도 잘 익은 자두의 붉은색(Rede)이 떠올랐다.
신진호 커피비평가협회(CCA) 커피테이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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