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호의 커피노트> 파카마라, 엘살바도르의 자부심
2024-11-04
엘살바도르 커피 테이스팅이 5일 오후 4시부터 1시간 30분 동안 서울 금천구 가산동 커피비평가협회(CCA) 트레이닝센터에서 열렸다. 이 행사는 ‘컵 오브 엑설런스(Cup of Excellence, COE) 2024’ 상위에 랭크된 2종류의 커피를 블라인드 방식으로 핸드드립과 커핑(Cupping)으로 나누어 진행됐다.
하이메 로페스(Jaime José Lopez Badia) 주한 엘살바도르 대사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엘살바도르 커피로 커핑을 하게 되어 뜻깊다”며 “한국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엘살바도르 커피를 많이 수입하는 국가로, 소비자들의 의견을 듣고 커피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의 커피 전문가들이 어떻게 맛을 느끼고 평가하는지 알고 싶어 올해 대회에서 상위권에 오른 버번(Bourbon)과 SL28 두 종류를 가져 왔다”며 “COE 2024에서 우승한 커피는 오는 18일 온라인 옥션에서 판매되는데, 이 보다 앞서 소비국인 한국에서 세계 처음으로 커핑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엘살바도르 커피 산지는 해발 2381m의 화산 토양의 아파네카 일라마테펙(Apaneca Ilamatepec)과 해발고도 1000m의 진흙 토양의 알로테펙 메타판(Alotepec Metapán), 엘발사모 케살테펙(El Bálsamo Quezaltepec, 해발 800m), 치촌테펙(Chichontepec, 해발 2100m), 테카파(Tecapa, 해발 900m), 카카와티케(Cacahuatique, 해발 900m)로 나뉘는데, 로페스 대사는 ”각 지역마다 품종이 다르고 향미도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로페스 대사는 파카마라(Pacamara)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다. 그는 “파카마라는 전체 생산량 가운데 3% 밖에는 안 되지만 퀄러티(Quality·품질)가 높다”며 “파카마라를 한국 시장에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엘살바도르커피연구소(Instituto Salvadoreño del Café, ISC)는 1950년부터 30년 동안 티피카 계열의 마라고지페(Maragogipe)와 버번(Bourbon) 타입의 파카스(Pacas)를 교배해 향미(Flavor)가 뛰어난 파카마라를 농가에 보급했다. 파카마라는 유전적으로 불안해 같은 환경에서 재배한다고 해도 해마다 품질이 들쭉날쭉하기도 하지만 묵직한 바디감과 꽃향(Floral), 과일향(Fruity)이 탁월해 중미 국가의 커피 품평회에서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실제로 올해 열린 ‘엘살바도르 COE 2024(워시드+허니프로세싱 부문)’에서도 파카마라는 1위뿐 아니라 2~6위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로페스 대사의 환영사에 이어 본격적으로 테이스팅에 들어갔다. 먼저 핸드드립. 첫 번째 커피에서 복숭아와 초콜릿의 아로마(Aroma)가 느껴졌다.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자 자두 맛이 나면서 약간 그린(Green)이 느껴졌다. 버번의 향미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두 번째 커피에서는 초콜릿과 견과류(Nutty)의 아로마가, 향미는 자몽(Grapefruit)과 초콜릿이 느껴지면서 레몬의 상큼함이 묻어났다. 커피가 식으니 약간 쓴맛도 느껴졌다. 이 커피는 SL28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핸드드립 테이스팅을 마치고 커핑에 들어갔다. #1 커피의 분쇄한 가루(Fragment)에서 스파이스(Spices)하면서 묵직한 아로마가 피어올랐다. 묵직함은 약냄새(Medicinal)와 흙내음(Earthy)이 섞이면서 발효 향을 풍기는 말린 자두(Prune)라는 느낌이었다.
#2 커피의 아로마는 꽃향(Floral)과 과일향(Fruity)이 어우러지면서 생동감이 넘쳤다. 향긋한 내음이 기분까지 한 단계 업(Up)시키는 느낌이었다.
스푼으로 #1과 #2 커피를 떠서 입 안에 넣고 향미를 음미해 보니 핸드드립에서 느끼는 깔끔한 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두 커피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향미도 핸드드립에서 느끼는 것과 비슷했다.
로베르또 휘게로아(Roberto A. Figueroa Martínez) 주한 엘살바도르 대사관 경제담당 참사관도 COE 2024 수상 커피를 처음 접한다면서 커핑에 참여해 열심히 평가하는 모습이었다.
커피비평가협회 회원들이 각자 커핑을 마치자 토의에 들어갔다. 첫 번째 커피는 깻잎과 스파이스, 블랙베리(Blackberry), 말린 자두(Prune), 허브(Herb-likel) 향미가 느껴지고, 두 번째 커피는 말린 과일, 꽃향 가운데서도 재스민, 초콜릿, 와인(Winey)의 향미로 수렴됐다.
생산자 노트를 보니 첫 번째와 두 번째 커피 모두 아파네카 일라마테펙 지역에서 생산된 것으로 가공방법이 내추럴(Natural)인 버번과 SL28이었고, COE 2024에서 85점 이상을 받은 스페셜티 커피다.
박세영 커피비평가협회 인스트럭터는 “첫번째 커피의 아로마는 로즈와 딸기잼, 향신료가 느껴지고, 산미는 미디엄(Medium) 마이너스(-), 바디는 미디엄 플러스(+), 향미는 캐러멜과 멜론, 자몽”이며 “두 번째 커피의 아로마는 구아바와 파파야, 초콜릿, 산미는 미디움, 바디는 미디엄 마이너스(-), 향미는 쇼비뇽블랑과 같은 와인과 애플민트, 과실주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은 "이번 커핑은 흥미롭게도 버번 원종과 스콧연구소에서 버번을 바탕으로 개발한 SL28를 향미적으로 비교함으로써 DNA의 차이가 맛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경험할 수 있었다"며 "엘살바도르는 테루아에 맞는 품종과 허니프로세싱과 같은 가공기술을 통해 고급화에 성공한 커피 생산국으로서 세계 커피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엘살바도르는 1970년대만 하더라도 23만톤의 커피를 생산해 세계 3위 생산량과 세계 4위 수출국으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1979년부터 1992년까지 이어진 내전과 2000년 국제 커피 가격 하락으로 커피 산업은 크게 위축되었다.
하지만 엘살바도르는 2021년 농업구조조정과 기술 개발 등을 통해 커피 산업을 회복시킨데 이어 2003년 컵 오브 엑설런스(Cup of Excellence, COE) 개최를 계기로 스페셜티 커피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로베르또 참사관은 “한국인의 커피 사랑과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커피를 즐기는 문화가 대단하다”며 “엘살바도르의 커피 역사가 200년이 넘은 만큼 한국 커피 문화와 공유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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