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가정용 로스터 ‘팻보이(Phat Boy)’ 사용 리뷰
버튼만 누르면 16분후 드립, 에스프레소용 원두 완성
주방 후드 밑에서 사용하면 로스팅 연기 걱정도 없어
신진호 기자2024-07-24 17:50:05
이름처럼 ‘멋진 놈(Phat Boy)’이 왔다. 가정용 로스터(Roaster)인 팻보이는 정말 단순하지만 커피 로스팅이 잘 된다. 로스팅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자동 버튼만 누르면 16분 후 잘 볶인 커피 원두를 보고 감탄하게 된다. 로스팅은 힘들고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항간(巷間)의 상식을 여지없이 깨뜨려 버린다.
커피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사람이라면 궁극적으로 로스팅에 이르게 된다. 기자 또한 맥심 커피를 마시다 자판기 커피, 아메리카노, 캡슐 커피 등을 거쳐 결국 로스팅에 도전하게 됐다. 처음 접한 로스터기는 일본에서 특허까지 받은 이리조주(煎り上手). 60g정도 생두를 넣고 가스레인지 등 불 위에서 좌우로 6~10분 흔들어주면 로스팅이 완성된다. 로스팅은 그런대로 됐지만 한 번에 생두를 볶을 수 있는 양이 적은 것이 문제였다.
두 번째는 음식을 볶을 때 사용하는 웍(Wok)을 선택했다. 한 번에 볶을 수 있는 양이 상대적으로 많고, 콩이나 깨를 볶듯이 주걱으로 생두를 뒤집어 주면 괜찮게 볶였다. 옥상에서 휴대용 가스버너를 이용해서 생두를 볶았기에 연기도 문제가 안 됐다.
하지만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웍 로스팅을 단념해야 했다. 주방 후두를 최대로 틀어도 연기가 빠지지 않고 거실에 가득 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네 카페(Gene Cafe) 로스터를 장만해 열심히 커피를 볶았다. 하스가란티 로스터기 2.5㎏과 부자로스터 B80도 사용법을 익혔다.
그러다 팻보이를 접하게 됐다. 첫 느낌이 ‘과연 로스팅이 될까’라는 것이었다. 높이 22㎝에 불과한 원통형 모양으로 로스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 우라가(Uraga) 100g [MED] 모드 로스팅
테스트 삼아 해발고도 2000m 이상에서 자라 생두 밀도가 높은 에티오피아 구지(Guji) 우라가(Uraga) G1 내추럴(Natural) 100g을 팻보이에 넣고 [MED] 버튼을 눌렀다. [MED] 모드는 드립으로 마시기 좋은 중간 볶기 정도로 미디엄(Medium)의 약자다.
‘웽’하는 조금 큰 소리와 함께 생두는 회전운동을 하며 돌아갔고, 30초 정도 지나자 벗겨진 실버스킨(Silver Skin)인 채프(Chaff)가 통속에서 날리는 모습이 보였다. 1분이 지나자 지푸라기 냄새(Hay-like)가 났고 2분이 지나자 견과류(Nutty) 향이 올라왔다. 4분 정도가 지나면서 생두 색깔이 시나몬(Cinnamon)으로, 6분에 연갈색으로 바뀌었다. 시계가 7분을 가리킬 때 ‘탁’하는 1차 팝핑(Popping) 소리가 처음 들렸고, 8분에 가장 왕성하게 팝핑이 이뤄졌다.
9분30초 정도가 지나자 팻보이에서 ‘삐 삐 삐’하는 소리와 함께 열풍이 한단계 낮아졌지만 팝핑이 계속됐고, 탄내가 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두 색깔은 갈색(Brown)에서 짙은 갈색으로 변했다. 12분에 [MED] 색깔이 빨간색에서 파란색으로 바뀌면서 히터의 가열이 멈춤과 동시에 쿨링(Cooling)이 시작됐다. 4분 후 쿨링이 멈추자 원두를 채에 담았다. 원두 온도는 40도 이하로 뜨겁지 않았다.
로스팅 과정 생두에서 벗겨진 채프는 상부 '채프 수집 바스켓(Chaff collection basket)'에 잘 모였다. 뚜껑 손잡이를 잡고 오른쪽으로 살짝 돌려주면 뚜껑이 분리돼 채프 버리기도 쉽다. 로스팅을 마친 원두는 83.2g이었다.
로스팅 다음날 채에 담아 둔 원두를 보니 커피 오일이 배어 원두가 번들거렸다. ‘생두에 너무 많은 열을 주지 않았나’란 생각이 들었다. 가스가 어느 정도 빠져 나갔다고 판단하고 로스팅 이틀 후 테이스팅을 해봤다.
원두를 분쇄한 뒤 아로마(Aroma)를 맡자 향신료(Spices)와 코코넛 향이 올라왔지만 우라가 내추럴 특유의 꽃향(Floral)과 과일향(Fruity)은 없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셔보니 바디(Body)는 미디엄+로 느껴졌다. 향미에서는 산미를 거의 느끼지 못하고 약간의 쓴맛과 함께 견과류(Nutty) 중에서도 밤을 먹는 듯 묵직하면서 둔한 느낌이 났다.
우라가 배치(Batch) 사이즈(80g) 낮춰 [MED] 모드 로스팅
두 번째 로스팅도 첫 번째와 같이 우라가 내추럴을 선택했지만 배치(Batch,한번에 로스팅할 수 있는 양) 사이즈를 80g으로 줄였다. 보통 생두 양을 줄이면 화력이 더 세져 콩이 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반대다. 첫 번째 로스팅은 작은 공간에 너무 많은 생두를 집어넣어 열이 갇히면서 콩이 너무 바싹 볶아졌다는 생각에 열풍이 쉽게 순환되도록 공간을 약간 비웠다.
[MED] 버튼을 누르자 생두는 첫 번째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면서 로스팅이 됐다. 그러나 ‘탁’하는 첫 팝핑 소리가 첫 번째 로스팅보다 1분30초 늦은 8분35초에 들렸다. 가장 왕성한 팝핑도 로스팅 시작 10분이 지난 뒤였다. 로스팅을 마친 원두는 67.8g이었다. 로스팅을 마치고 이틀이 지나도 원두에 오일이 배지 않았다.
테이스팅을 해보니 바디는 미디엄 정도, 향미는 다크 초콜릿과 견과류의 구수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산미가 약해 커피 맛이 너무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냐 기차싸이니(Gichathaini) 80g [MED] 모드 로스팅
세번째 로스팅은 생두를 케냐 니에리 기차싸이니(Nyeri Gichathaini) 워시드(Washed)로 바꾸어 [MED]로 진행했다. ‘탁’하는 첫 팝핑 소리가 8분28초에 들렸고 10분15초에 가장 왕성하게 팝핑이 일어났다. 로스팅을 마친 원두는 69.6g이었다. 테이스팅을 하기 위해 분쇄한 뒤 아로마는 스파이스와 꽃향이 느껴졌다. 향미에서는 기차싸이니의 산미가 느껴졌지만 와이(Winey)보다는 베리류의 단맛이 묻어났다. 바디는 미디엄+.
케냐 기차싸이니(Gichathaini) 80g [DARK] 모드 로스팅
네 번째 로스팅은 세번째와 같은 기차싸이니 생두지만 [DARK] 모드로 진행했다. [DARK]는 [MED]와 로스팅 시간은 같지만 열풍 강도가 높아 2차 크랙까지 진행되어 에스프레소 등의 커피를 내릴 때 선택하면 좋다.
[DARK]와 [MED]의 가장 큰 차이는 연기다. 사무실이나 집 안에서 [MED]로 로스팅을 진행할 때 냄새와 연기는 감내할 수준이다. 하지만 [DARK]로 진행할 때는 탄내와 연기가 심해 꼭 주방 후드를 최대로 켜고 해야 한다.
[DARK] 버튼을 누른지 7분40초가 지나자 ‘탁’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팝핑이 진행됐고, 10분10초에 2차 팝핑이 진행되면서 탄 냄새와 함께 검은 연기가 치솟아 주방 후드로 빨려 들어갔다. 가장 왕성하게 팝핑이 진행된 시간은 10분50초였다. 로스팅을 마친 원두는 62.3g이었다.
로스팅이 끝나고 원두를 보니 오일에 흠뻑 젖어 반들반들했다. 이틀 후 비알레띠(Bialetti) 모카포트로 커피를 추출하자 다크 초콜릿의 진한 향이 퍼져 나가면서 ‘나만의 에스프레소’가 완성됐다.
팻보이를 사용하면서 자동 모드 버튼만 누르면 생두를 손쉽게 핸드드립이나 에스프레소용으로 로스팅할 수 있어 시중의 어떤 홈로스터기보다 편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은 "홈로스팅이 확산되면서 해외직구를 통해 소형 로스터를 구입하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 전기와 열을 다루는 만큼 국내 안전검사를 거쳐 정식 수입하는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유익하다"며 "작은 로스터들 중에는 열량이 부족해 실제 커피의 향미가 잘 발현되지 않는 제품이 적지 않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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