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과일의 상큼한 쇼비뇽 블랑이 연상되는 게샤
잔잔하고 도드라지지 않는 향미의 진수 마라고지페
솔리스 대사 “커피는 한국-과테말라 잇는 '문화 대사'”
신진호 기자2024-08-15 10:52:33
게샤(Gesha)와 마라고지페(Maragogipe)는 드물고 귀한 커피다. '신이 내린 커피'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세계 최고의 커피 반열에 오른 게샤는 사실 커피 매니아라도 마시기에 벅차다. 생산량도 적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마라고지페 또한 게샤와 비슷한 실정이다. 1870년 브라질의 작은 마을인 마라고지페에서 발견돼 마을 이름을 따서 명명된 이 커피는 향미가 뛰어나지만 병충해에 약해 전 세계로 퍼지지 못하고 중남미 지역에서만 생산된다. 이 때문에 마라고지페는 국내에 수입되는 양이 통계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미약하고, 가격도 높아 커피 애호가라도 마셔 본 사람이 드물다.
14일 오후 3시부터 1시간30분 동안 서울 금천구 가산동 커피비평가협회(CCA) 트레이닝센터에서 과테말라에 생산된 게샤와 마라고지페 커피 테이스팅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사라 솔리스(Sara Solis) 주한 과테말라 대사와 자켈린 멜가르(Jaqueline Melgar) 공사참사관이 참석했다.
과테말라의 커피 산지는 우에우에테낭고(Huehuetenango)와 볼케닉 산마르코스(Volcanic SanMarcos), 트래디셔널 아티틀란(Traditional Atitlán), 레인포레스트 코반(Rainforest Cobán), 아카테낭고 밸리(Acatenango Valley), 안티구아 커피(Antigua Coffee), 프라이하네스 플래토(Fraijanes Plateau), 뉴 오리엔테(New Oriente) 등 8개 지역이다. 산지마다 해발 고도와 토양, 강수량 등이 조금씩 달라 커피 향미(Flavor)도 차이를 보인다.
실제로 한국에 잘 알려진 안티구아 커피의 향미는 밝은 산미(Bright acidity)와 초콜릿, 향신료(Spices)가 느껴지고, 우에우에테낭고는 복합미(Complexity)와 단맛(Sweetness), 열대 과일(Tropical fruits), 활기넘치는 산미(Lively acidity)가 좋다는 평가다.
이번에 테이스팅한 게샤와 마라고지페는 뉴 오리엔테의 엘 카스카할(El Cascajal) 농장에서 자란 커피다. 농장에 자갈이 많아 농장 이름을 자갈밭인 카스카할로 지었다고 한다. 자갈은 낮에 햇볕을 받아 밤에 천천히 식어 커피 나무에 급격한 기온 변화를 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자갈이 많은 토양은 와인처럼 커피 향미에도 영향을 미쳐 이곳에서 자란 커피는 날카롭지 않고 부드럽다는 평가다.
뉴 오리엔테는 과테말라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이었으나 1950년대부터 시작된 커피 재배로 지역 경제가 점차 성장하고 있다. 게샤와 마라고지페의 재배 고도는 1540m이며, 가공법은 워시드(Washed)로 같다.
테이스팅은 블라인드 방식으로 진행됐다. 원두는 로스팅한 지 48시간이 지나, 가스가 빠져나가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였다.
회원들은 녹색 잔과 노란색 잔에 담긴 커피를 5분간 테이스팅한 뒤 돌아가면서 자신이 느낀 향미 속성(Attributes)을 표현했다. 기자는 녹색 잔에서 너티(Nutty)와 꽃(Floral) 향의 아로마(Aroma)가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향미는 오렌지, 다크 초콜릿(Dark Chocolate), 복숭아(Peach)라고 표현했다. 노란색 잔에 담긴 커피의 아로마에서는 웨하스(Wafer) 같은 달콤함이 묻어났고, 향미는 레몬과 말린 자두(Prune), 그리고 과일과 꽃이 엉겨 붙은 '뭉친 맛'을 느꼈다.
다른 회원들의 속성은 좀 더 다양하게 나왔다. 녹색 잔에서는 재스민, 아몬드, 멜론, 크루아상(Croissant), 블랙베리(Blackberry), 샴페인의 향미가, 노란색 잔에 담긴 커피에서는 바닐라, 라스베리(Raspberry), 피칸(Pecan), 탠저린(Tangerine) 등으로 압축됐다.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그라인더를 교체해 원두를 분쇄·추출한 뒤 2차 테이스팅에 돌입했다. 1차 테이스팅과 달리 2차에서는 두 커피 모두 와인(Wine)이 연상됐다. 그러나 세부적으로는 좀 달랐다. 녹색 잔의 커피는 꽃과 과일의 향미가 상큼한 쇼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이 느껴졌고, 노란색 잔에서는 샤르도네(Chardonnay)와 같이 잔잔하면서도 도드라지지 않는 꽃과 과일의 향미가 났다.
다른 회원들의 향미 평가는 녹색 잔의 경우 장미(Rose)와 블루베리(Blueberry), 메이플 시럽(Maple Syrup)이, 노란색은 차(Tea-like)와 꿀(Honey), 꽃향(Floral) 등이었다.
테이스팅을 마치고 나서야 녹색 잔 커피는 과테말라 게샤, 노란색 잔은 마라고지페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솔리스 대사는 과테말라 커피에 대한 사랑이 넘쳤다. 그는 과테말라 커피는 탁월한 품질(Exceptional quality)로 1880대부터 과테말라의 주요 수출품이었고, 1889년 프랑스 엑스포에서 과테말라 커피가 세계 최고 커피의 하나(One of the Best Coffees in the World)로 선정될 정도로 생산자들의 자부심이 강하고, 세계적으로 최고 커피로 인정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현재 과테말라의 한국 커피 수출은 전체 생산량의 5%정도지만, 한국에는 과테말라 수출품 가운데 커피가 가장 잘 알려진 상품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과테말라에서 철과 니켈의 합금인 페로니켈(Ferronikel)과 알루미늄, 니켈, 구리, 납, 면화, 과일 등도 많이 수입하고 있다. 과테말라는 2024년 1월 8일 한-중미(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파나마) 자유무역협정(FTA) 가입 의정서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커피와 당밀 등 9791개 품목의 관세를 즉시 철폐했고, 과테말라 또한 6677개 품목의 수입 관세를 철폐했다. 향후 5년간 관세 철폐 상품은 늘어난다.
솔리스 대사는 "과테말라에는 '커피가 괜찮다면 과테말라가 좋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커피는 과테말라를 상징한다"며 "커피는 생산자들에게 중요 소득원이면서 최고의 열정(Passion for excellence)과 진실된 향미(Taste for authenticity)를 담은 한 잔의 커피를 통해 한국과 과테말라를 잇는 '문화 대사(Cultural Ambassador)'"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과테말라 커피 테이스팅을 주관한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은 "과테말라 커피라고 하면 맛도 보지 않고 지레 스모키(Smoky)하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커피 테이스팅(Coffee tasting) 자리는 이런 오류나 그릇된 습관을 바로 잡는 좋은 기회"라면서 "더욱이 향미 뿐만 아니라 커피가 자란 땅과 재배한 사람들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를 통해 정서적으로도 과테말라 커피의 소중함을 가슴에 새기는 유익한 자리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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