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들의 삶을 알아야 커피가 제대로 보입니다”

카메룬 커피 수입 안광중 샤인위드컴페니언 이사
“내전으로 농민들 고통…하루 빨리 평화 오길 소망”
신진호 기자 2023-02-26 22:03:12
안광중 샤인위드컴페니언 이사가 카메룬 커피와 농부들에 대해 이야기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안광중 샤인위드컴페니언 이사가 서울 금천구 서부샛길 커피비평가협회(CCA)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카메룬 커피와 농부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카메룬 스페셜 커피를 수입하는 안광중(52) 샤인위드컴페니언(Shine with Companion) 이사에게 커피는 ‘사람’이다. 그에게 커피는 단순히 세계인이 즐기는 기호 음료가 아니며, 더욱이 상품도 아니다. 그는 커피를 통해 농부들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기쁨과 슬픔을 그들과 함께하며, 기꺼이 재배자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안 이사에게 “커피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저는 커피를 잘 모르고, 커피에 큰 의미를 담지 않는다. 커피가 중요하기 보다 그들(커피 농부)의 삶이 가치를 가지고 있고, 그들의 삶의 모습을 제대로 전해주는 사람이 필요한데, 그 일을 제가 하고 있다”는 약간은 추상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인터뷰를 하면서 처음에는 혼동이 왔다. 커피를 상품으로 보지 않고 커피 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삶의 무게를 느끼고 있는 안 이사의 모습은 이익을 쫓는 여는 비즈니스맨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사진=안광중 샤인위드컴페니언 이사
커피 체리를 수확하고 있는 카메룬 알롱시 농장의 농부. 사진=안광중 샤인위드컴페니언 이사 제공

안 이사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실 커피는 ‘약탈적 상품’이다. 커피 농가는 거대 자본의 힘에 항상 휘둘린다. 커피 농가는 죽도록 일하지만 손에 쥐는 것은 생산비에도 못미칠 때가 많다. 커피 농사를 짓는 대다수는 좋은 커피를 마셔보지 못한다. 좋은 것은 팔아야 하기에 그들 몫은 항상 팔리지 않는 ‘못난이 커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농민은 한평생 커피를 마셔보지도 못한다. ‘웃픈 현실’이다. 이같은 커피 산지의 아픈 현실이 안 이사의 사고(思考)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까? 그는 자신을 ‘커피 헌터(Coffee Hunter)’가 아닌 커피 산지 농부들의 삶을 알리고 판로를 열어주는 ’커피 캐스팅 디렉터(Coffee Casting Director)’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그는 "커피로 생업을 이어가고, 커피가 삶의 전부인 농부들의 커피를 사냥하듯 골라서 사가는 수입업자는 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안 이사는 보험업계에서 소위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성공 가도를 달렸지만 항상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소설을 써 보는 등 이것 저것 해보며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 노력해 봤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더욱 공허했다. 

결국 3년간 ‘마음 고생’을 하다 마흔 셋이 되던 2014년 “(이런 삶을) 멈춰야겠다”는 생각으로 사표를 냈다. 안 이사는 “돈만 쫓고 살아오지 않았는지 여러 생각이 들었다”며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던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안 이사는 자신의 능력을 나누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러나 유럽 배낭 여행을 다녀와도, 커피 고향인 에티오피아에 가서도 딱히 ‘내 일’이라고 보이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 카메룬 커피 산지를 방문하고 충격을 받았다. 카메룬 현지인 조차 북쪽 고산지대에 위치한 아라비카 산지를 모를 정도로 커피는 카메룬에서도 생소한 것이었다. 물어물어 찾아간 곳의 커피 농부의 삶은 상상 이상으로 열악했다. 

하지만 안 이사는 그 열악함을 보고 피하기 보다는 자신의 달란트(재능)를 쓸 곳으로 생각했다. 안 이사는 “에티오피아는 척박했지만 제가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곳”이라며 “그러나 카메룬은 다른 사람보다 제가 할 수 있는 곳이며,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커피 수입에 나섰지만 순탄치 않았다. 첫 수입 물량 50%에서 하자가 발생했고, 농부에게 이익이 되는 직거래는 기존 커피협회의 방해에 막히기도 했다. 

사진=안광중 샤인위드컴페니언 이사 제공
마티 폰차가 카메룬 알롱시 농장에서 커피 건조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안광중 샤인위드컴페니언 이사 제공 

안 이사는 모든 것을 정리하려고 2015년 카메룬에 들어갔다 오히려 본격적으로 커피 수입에 나서게 됐다. ‘카메룬 통일의 건축가’로 불리는 존 응구 폰차(John Ngu Foncha)의 장남인 마티 폰차(Matti Foncha)의 바른 생각과 신념이 자신의 철학과 맞았기 때문이다. 영국 유학 출신인 폰차는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농민의 열악할 삶을 개선하기 위해 고향인 카메룬 북쪽 보요 지역(Boyo Division)에 돌아와 ‘함께 일하고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모토를 내걸고 ‘힐탑 농부직거래(Hilltop Farmers Direct) 조합’을 세웠다. 안 이사는 힐탑 조합과 손잡고 농부들에게 이익인 직거래 방식의 공정무역을 택했다. 

안 이사는 또한 카메룬 농부들이 자립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커피 구매 비용 이외 후원금을 기탁했다. 후원금은 마을 단위로 투입되어 가공시설을 짓고, 산속 마을 농부들이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오는 수고를 없애고 조합 사람들이 직접 커피를 가져올 수 있도록 오토바이 등을 구입하는데 쓰였다. 4개 마을이 후원금 혜택을 보면서 커피 품질도 놀랄 만큼 좋아졌다.      

그러니 안 이사에게 커피는 ‘약속’이다. 안 이사는 “(커피 재배자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어떻게 말 한 것을 지키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2016년 카메룬에 친프랑스 정부가 들어서면서 커피 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그해 9월 영어권 지역이며 커피 벨트인 북쪽지역의 바멘다(영국령 당시 수도)에서 변호사와 교사들이 정부의 차별적 대우와 일방적 프랑스식 교육 정책 전환에 반대하며 벌인 평화적 시위가 진압된 뒤 소요 사태에 이어 무력 충돌로 이어졌다. 

안 이사는 “정부가 시위 확산을 막는다는 구실로 2017년 1월 인터넷을 차단하자 모든 산업이 붕괴되기 시작했다”며 “인터넷으로 소통하고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이를 차단하니 커피 무역 등 모든 것이 멈춘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도 카메룬 현지에 다녀온 안 이사는 “정부군 통제 지역을 지날때는 통행세를 내야하고, 어느 곳에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심각한 상황”이라며 전했다. 

그는 “정부 정책에 가장 저항이 심했던 보요지역 벨로-아차 마을이 폐쇄되는 등 2018년부터 올해까지 70개 마을에서 고향을 떠난 사람이 70만명에 이른다”며 “그럼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아직도 커피 나무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안 이사는 카메룬의 현 상황에 대해 “너무도 화가 난다”며 울분을 토로했다. 그는 “농부들이 후원금으로 창고를 짓고 관개시설을 개선했다면 페이스북으로 사진을 보내오고, 해가 갈수록 눈에 뛸 정도로 커피 품질이 개선되어 기쁨이 컸는데, 모든 것이 무너졌다"며 “언제 예전처럼 다시 돌아갈지 가늠이 안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안광중 샤인위드컴페니언 이사(오른쪽)가 카메룬 힐탑농부직거래조합 재건을 위한 가공시설 신축 공사현장에서 마티 폰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안광중 샤인위드컴페니언 이사 제공.

안 이사에게 카메룬은 아픈 손가락인 듯 했다. 그는 형제와도 같은 농부들이 있고, 자신과 삶의 철학이 같으면서 존경하는 폰차가 있는 곳이 가난과 전쟁으로 고통받는 현실에 너무도 괴로워했다. 

안 이사가 간절히 희망하는 것은 카메룬의 평화다. 그는 “(무력 충돌 이후) 도로도, 주민들의 생활도 더욱 나빠지는 등 카메룬의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다”며 “하루 빨리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 무너진 커피 창고와 수리시설 등을 재건해 농부들이 제값을 받고 커피를 팔아 생활 수준이 높아지는 것을 소망한다”고 말했다.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