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하늘과 숲만 보이는 오지에서 커피 재배
1인당 500그루 커피나무 소유…가족단위 농사
꽃향·클로버 아로마…초콜릿, 오렌지, 녹차 맛
신진호 기자2024-02-28 12:19:22
10여 년 전 파푸아뉴기니(Papua New Guinea)를 여행 갔을 때 느낌은 ‘날 것’ 그 자체였다. 수도인 포토모르즈비(Port Morsby)의 중심가만 살짝 벗어나도 황톳길이었고, 주택은 나무와 양철로 만들어 허름했다.
가장 주의할 사항은 현지인과 눈을 마주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은 외부인이 자신의 눈을 보는 것을 적대적인 것으로 간주해 공격적 성향을 드러낸다고 했다. 그래서 차량에 탔을 때도 커텐으로 유리창을 가리고 이동했고, 거리에서도 땅만 보며 걸어야했다. 특히 혼자서 걷는 것은 절대 금물이었다. 치안상태가 나빠 강·절도가 자주 발생하고, 심지어 살인까지도 일어난다고 했다.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은 부족(部族) 단위로 살아간다. 사용하는 언어가 800개 이상에 이를 정도로 다양한 부족이 사는데, 원주민들은 농업과 어업 등 1차 산업에 종사해 삶이 고단하다.
해안지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하이랜드(High Land)라는 단어는 ‘공포’다. 해안가 사람들의 삶도 나은 것이 없지만 하이랜드(High Land)라고 불리는 고산지대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풍족하다. 낚시를 하거나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면 물고기라도 잡을 수 있어 때문이다. 먹을 것이 항상 부족한 하이랜드 사람들이 해안가 마을을 습격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요즘도 하이랜드에서는 부족 간 다툼이 발생해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어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파푸아뉴기니를 여행 자제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10여년이 흐른 지금 이들의 삶이 달라졌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파푸아뉴기니의 면적(46만2840㎢)은 한반도의 2배에 달하고, 천연가스와 석유가 나올 정도로 풍부한 지하자원을 자랑하지만 1인당 GDP(국내총생산액)는 2581달러(IMF통계 2023년 기준)로 여전히 10여 년 전과 같은 3000달러를 밑돈다.
파푸아뉴기니에서 가장 높은 산인 빌헤름산(Mount Wilhelm, 해발 4509m) 주변 하이랜드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은 커피다. 이 지역은 자메이카의 기후와 토양이 비슷해 1890년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을 들여와 심었다. 또한 탄자니아 북부 고원에 위치한 아루샤(Arusha)에서도 커피나무를 가져왔다. 아루샤는 열매가 둥그스름해서 버번(Bourbon)과 비슷해 보이면서도 잎이 좁고 갈색이라는 티피카(Typica) 특징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번에 테이스팅할 커피는 파푸아뉴기니 까무시(Kamusi) 블루마운틴 워시드(washed)다. 까무시는 동부 고지대(Eastern Highland) 다울로 지구(Daulo District)에 속한 지역인데, 해발 2000~2200m에 달한다. 5개 마을에 17세 이상 주민이 3800명인데, 농부가 2500명에 달한다. 농부 한 명당 평균 500그루의 커피 나무를 소유하고 있어, 커피밭은 대략 480헥타르(144만평)에 이른다. 카무시 지역에 3개의 큰 강이 흐르고 있는 등 수자원이 풍부해 워시드로 커피 가공을 하는데 문제가 없다. 남반구라 커피 수확은 4월부터 8월까지 이어진다.
포트모르즈비에서 이곳으로 가려면 대중교통 수단은 없고, 2차로 화물수송로인 하일랜즈 고속도로(Highlands Highway)를 이용하다 비포장 황톳길을 타고 들어가야 한다. 농업기술이 발달되지 않고, 농가의 자본력이 부족해 커피는 유기농으로 키운다.
까무시 블루마운틴 워시드를 핸드밀로 분쇄하자 상큼한 클로버(Clover)의 향이 퍼졌다.
핸드드립을 한 뒤 한 모금 마시자 초콜릿의 감미로운 맛이 입안을 감돌면서 자몽의 산미도 느껴졌다. 하지만 풋내의 그린(Green)이 혀 끝에 느껴지면서 사유를 방해했다.
두 번째 핸드드립에서도 뭔가 약간 부족한 느낌이었다. 커피 테이스팅 후반부로 갈수록 텍스쳐(Texture)가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핸드드립할 때 커피 10g에 물 150g의 정량보다 물을 많이 부어 밍밍한 커피를 마실 때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핸드드립한 뒤 집중해서 테이스팅을 했다. 꽃과 과일의 아로마가 느꼈고, 약하다고 느낀 텍스쳐는 녹차(Tea-like)를 마시는 느낌으로 긍정적으로 변했다. 이는 로스팅 후 가스가 충분히 빠지지 않아 테이스팅에서 본래의 까무시 블루마운틴 워시드의 속성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이스팅을 마치고 생산자 노트와 현지에서 보내온 사진을 보고 웃음이 절로 나왔다. 정말 까무시 블루마운틴 워시드는 자연 그대로의 ‘날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돌로 으깨 커피 체리 껍질을 벗기면(Pulping), 마당에 옹기종기 모인 가족들은 커피 생두에서 점액질(Mucilage)을 제거하느라 여념이 없다. 가족들이 사는 집은 소박하다고 표현하기 민망할 정도로 나무로 둘레를 치고 풀로 지붕을 덮은 형태다.
생산자 노트에 기록된 오렌지와 망고, 허브티, 재스민의 향미가 고단하지만 자연에 순응하는 그들의 삶이 투영된 것으로 보였다. 그러니 까무시 블루마운틴 워시드를 마시면서 연상되는 색깔(Color)은 자연의 색인 그린(Green)이다.
커피비평가협회 박영순 회장은 “파푸아뉴기니는 탄자니아, 에콰도르와 비슷한 남위 6도의 아열대 기후대에 속해 커피를 재배하기 적절하고, 바다의 영향을 받는 것이 자메이카와 유사해 향미의 잠재력이 우수한 블루마운틴 품종이 잘 자란다”면서 “밀림에 들어가 채집하는 커피가 여전히 많아 가공기술이 부족하지만 친자연적인 유기농 커피들로 커피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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