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의 경제톡> 미·중 갈등 격화 속 우리의 전략은
2024-11-18
세계은행은 매년 개발 관련 주제를 정해 ‘세계 개발 보고서(World Development Report)’를 발간하고 있다. 올해는 중진국이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힘들다는 내용을 다룬 ‘중진국의 함정(The Middle-Income Trap)’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에서는 대부분의 중진국들이 고소득 국가(혹은 선진국)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상을 다루고 있는데, 한국과 대만 등 일부 국가들은 중진국의 함정을 극복한 모범적인 사례로 들어 주목을 끌고 있다.
세계은행은 ‘중진국의 함정’을 한 국가가 중진국 수준의 경제 발전을 이룩한 후, 고소득 국가로 도약하지 못하고 장기간 경제 성장이 정체되거나 오히려 후퇴하는 현상이라고 정의한다. 함정에 빠진 국가들은 초기에는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지만, 일정 수준의 소득에 도달한 후에는 성장 동력이 약해져 경제 성장이 정체된다는 것이다.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는 주요 원인으로는 산업 구조의 변화 부재, 기술 혁신 부족, 생산성 향상의 한계 등을 꼽고 있다.
세계은행은 보고서에서 중진국이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두 번의 전환이 요구된다고 밝히고 있다. 첫 번째 전환은 투자 가속화를 위한 1i(투자) 전략에서 투자와 기술 도입 및 확산에 중점을 두는 2i(투자+기술 도입) 전략으로의 전환으로, 주로 하위 중진국에 해당한다. 두 번째 전환은 혁신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 3i(투자+기술 도입+혁신) 전략으로의 전환인데, 이는 상위 중진국에 적용된다. 그런데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는 국가들은 앞서 언급한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전환에 실패한다는 것이다.
한편 세계은행은 한국과 대만 등은 혁신, 교육, 정부 주도의 산업 정책을 바탕으로 경제 성장을 지속한 결과, 중진국의 함정을 효율적으로 극복하고 고소득 국가로 나아간 대표적인 사례라고 소개했다.
한국은 1960년대부터 정부 주도의 경제 개발 계획을 통해 빠른 산업화를 이뤘다(1i). 초기에는 외국 자본과 기술을 도입해 제조업을 발전시켰으며(2i), 2000년대 이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을 통해 경제 성장을 지속했다(3i). 또한 산업화 초기와 중기에는 정부 주도의 강력한 산업 정책이 경제 성장을 이끌었고, 혁신 단계에 들어와서는 교육과 인적 자본 개발에 대한 투자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만의 경우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빠르게 성장했다. 초기에는 농업에 집중했지만, 점차 제조업과 기술 중심 산업으로 전환했다. 대만 경제의 특징은 지정학적인 한계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혁신과 기술 개발이 주류를 이루었다. 또한 좁은 내수 시장을 극복하기 위해 수출 중심의 대외 개방 정책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 나갔다.
중진국의 함정을 극복한 한국과 대만의 공통점은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1) 외국 자본과 기술을 도입해 국내 산업을 일으키고, 2) 정부 주도의 강력한 계획 경제를 통해 경제 성장을 지원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교육과 인적 자본 개발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로 ‘저부가가치 산업→고부가가치 산업→첨단 산업’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혁신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선진국에 진입을 공식화한 한국 경제는 이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적극적인 R&D 투자와 혁신을 강화해야 한다.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미래 산업에 뒤처지지 않도록 기술 및 제도적인 혁신이 필수적이다. 아울러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혁신을 지원하는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다음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AI 시대에 대비하는 디지털 기술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책의 유연성 제고다. 그동안 한국 경제의 눈부신 성장의 배경에는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규제를 통한 효율적인 경쟁 체제 뒷받침이 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다가오는 시대는 창의력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혁신을 요구한다. 따라서 변화하는 환경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규제를 완화하고 새로운 기술과 산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원호 비즈빅데이터연구소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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